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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가 정신으로 무장한 사람들이 창업에 뛰어들며 한국 경제에 새 바람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어떤 사진이 원본일까요?”
이주완(37) 드랩 대표가 노트북에 사진 두 장을 띄우고 말했다. 한 장은 실제 사진이고, 다른 한 장은 생성형 AI 서비스 ‘드랩아트’가 만든 가상의 이미지였다. 두 사진은 구별이 불가능할 만큼 진짜와 가짜 간에 차이점이 거의 없었다. 가상의 이미지는 같은 화장품을 다른 배경과 구도로 찍은 진짜 사진 같아 보였다.
드랩은 한국 시장에 최적화된 상품 이미지 생성 기술로 새로운 가능성을 열고 있는 회사다. 창업 2년 만에 현대백화점, 올리브영 등 주요 대기업이 쓰는 서비스로 성장했다. 드랩아트를 사용하면 상품 사진 한장을 찍기 위해 스튜디오와 사진 작가를 섭외하고, 한 장씩 보정하는 번거로움이 없다. 이 대표를 만나 창업 과정과 드랩의 비전을 들었다.
◇첫번째 창업은 삼성전자에 매각
이주완 대표는 AI 전문가다. 2010년 카이스트 전기전자공학부 졸업 후 대학원에 진학해 머신러닝을 전공했다. 2012년부터는 LG전자에서 IoT 서비스 등을 연구하는 전문연구요원으로 일했다. “이때부터 ‘내 것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혼자 창업을 준비하려다, 주위에 이제 막 창업하겠다는 팀이 있다고 해서 찾아가 공동창업자로 합류했죠. 챗봇 플랫폼 ‘플런티(Fluenty)’를 만들었고, 2년 정도 운영하다 2017년 삼성전자에 매각했습니다.”
삼성전자가 서비스와 인력을 모두 흡수하면서, 이 대표는 빅스비 부서에서 머신러닝 연구원으로 일했다. 하지만 회사 다니면서도 ‘언제 다시 새로운 AI 서비스를 만들까’ 생각 뿐이었다. “마침 삼성전자는 사내벤처를 발굴하고 육성하는 C-Lab(씨랩)이란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전문 지식이 없는 누구나 스마트폰으로 AI를 만드는 서비스를 아이템으로 참가했습니다.”
AI에 관련된 연이은 창업 경험은 이 대표에게 자신감을 줬다. 퇴사 후 새로운 팀을 꾸리기로 했다. 삼성전자 동료들이 공동창업자로 합류했다. 함께 빅스비 팀에서 일하던 서울대 AI 박사 출신 김태훈(37) 공동창업자, 카이스트에서 AI 박사를 마친 김민주(34) 공동창업자와 함께 2021년 10월 ‘드랩’을 결성했다. “아이템을 결정하기 전에 팀부터 먼저 꾸렸어요. 언제 피봇(제품·서비스 방향을 바꾸는 것)할지 모르는 아이템보다는 사람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거든요.”
창업 아이템을 찾기 위해 세상에 널려 있는 문제들부터 파악했다. 스타트업의 존재 이유는 ‘세상의 문제를 혁신적인 기술로 푸는 것’이라 생각했다. “저희 모두 AI 전공자들이다 보니, AI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찾았어요. 100개 이상의 문제가 모였고, 시장성 분석에 들어갔죠.”
치열한 논의 끝에 ‘커머스 판매자들이 상품 사진에 시간과 돈이 많이 들어 힘들어하고 있다’는 문제에 집중하기로 했다. “예를 들어 새로운 코트를 출시하려면, 제품 사진을 찍기 위해 시간이 오래 걸리고 비용이 상당히 들어요. 스튜디오, 사진 작가 섭외하는데 기본 100만원부터 시작하고요. 코트를 입고 있는 모델도 섭외해야겠죠. 사진 고르고, 보정하고 아무리 빨리 한다 해도 일주일은 걸립니다. 이 일을 새로운 제품이 나올 때마다 반복한다고 생각해보세요.”
◇한국인을 위한 AI 서비스 개발을 위해
2021년 말 다양한 배경과 구도의 제품 사진을 만들어내는 생성형 AI 서비스 개발에 돌입했다. 초창기 ‘커머스’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애를 먹었다. “2022년 말 베타 서비스를 풀고 피드백을 받았습니다. 많은 분이 ‘인간 모델’을 원하더라고요. 이후 드랩AI에 인간 모델 학습을 시켜 커머스 현장에 필요한 서비스로 개선해나갔습니다.”
드랩아트를 개발할 때 가장 중점을 둔 것은 ‘쉬운 사용법과 정확한 결과물’이었다. “생성형 AI를 목적에 맞게 활용하려면 ‘프롬프트(명령문)’를 잘 넣어야 해요. 프롬프트가 조금만 달라져도 결과물에 큰 차이가 나죠. 기대하고 AI에 프롬프트를 넣었는데 의도와 다른 결과물이 나오면, 실망하게 되고 결국 다시는 AI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는 요인이 됩니다. 이를 방지하려면 생성형 AI는 사용자 의도와 목적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수행해야 합니다. 그 능력을 ‘AI 컨트롤러빌리티’라고 하는데요. 결국 사용자가 딱 원하는 이미지를 생성할 수 있게 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복잡한 명령어 없이도 원하는 그림 뚝딱
2023년 중순 SaaS(software-as-a-service. 서비스형 소프트웨어) 형태로 정식 서비스를 내놨다. 이용자 입장에서 필요한 건 제품 사진 딱 한장이다. 사진 한 장만 업로드하면 드랩 AI가 각기 다른 배경, 오브제, 모델을 알아서 연출한다. 상품 사진, 광고 소재 이미지 생성에 특화돼있어 ‘미드저니(Midjourney)’와 같은 범용 생성형 AI와는 차원이 다르다.
“미드저니는 텍스트를 이미지로 한번에 만들어 내는 방식이고, 드랩은 이미지를 조금씩 그려나가는 방식입니다. 업로드한 제품 사진은 손상되면 안 되니, 상품은 유지하면서 주변부를 바꿔야 해요. 드랩아트는 ‘인페인팅(Inpainting)’ 기술에 특화돼있습니다. 이미지 처리 기술의 일종인데, 손상된 영역을 복원하거나 사라진 부분을 채워주는 기술입니다.”
한국인 정서에 맞는 이미지를 잘 만들고, 이용 방법이 어렵지 않다. 어려운 프롬프트(명령문)도 필요 없다. “드랩아트에 테마별로 예시 사진이 정리돼있습니다. 원하는 톤앤매너 테마를 선택하고 간단한 조건만 써넣으면 돼요. 프로그램을 설치하거나 코딩을 할 필요도 없습니다.”
◇인공지능 시대에 여전히 인간이 할 수 있는 일
쿠팡, 올리브영, 현대백화점, SPC 등 주요 기업이 드랩을 이용한다. 매출이 빠르게 커지고 있다. 작년 대비 올해 매출은 100배를 넘었고, 매달 전월 대비 3배 이상씩 성장중이다. 수익 모델은 ‘구독료’다. 가장 저렴한 구독료는 4900원이다. 가격대별로 한 달에 만들어낼 수 있는 이미지 수가 정해져있다.
드랩이 출발부터 잘 풀린 건 아니다. “불과 3년 전인 2021년만 해도, 이미지 생성 AI를 하는 곳이 없었습니다. 주변에 ‘시장성이 있겠냐’며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는 사람이 많았죠. 하지만 지금은 유사한 서비스를 운영하는 경쟁사가 많습니다. 타깃이 조금씩 다르죠. 머신러닝이 각 분야에서 데이터를 학습하면서 AI는 더 고도화될 겁니다.”
아직까지 이미지 생성 AI를 두고 사람들은 양가적인 반응을 보인다. “AI가 만든 이미지는 실제 사진보다 어색할 거라는 편견과, 기계가 만들었으니 100% 완벽해야 한다는 기대가 공존하는 것 같아요. 원본 사진과 드랩이 만든 사진을 두고 보면, 대다수 차이점을 찾지 못해요. ‘AI 이미지’라는 걸 알고 보니까 왠지 이상하다 느끼는 것이죠. 물론 아직 고쳐야 할 어색한 부분들은 있습니다. 다만 그게 ‘상품을 홍보하기 위한’ 목적을 달성하는 데 장애물이 되진 않습니다. 광고, 홍보 이미지에선 자연스러움보다 한눈에 봤을 때 강한 인상을 주는 게 중요해요.”
생성형 AI 산업에는 아직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하다. “AI 기술이 성숙해지고, 여기에 사람들이 익숙해지려면 2~3년 정도 더 걸릴 것 같아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죠. 이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가 중요한 것 같아요. 50년 전에 있던 직업 중 지금까지 남아있는 직업은 30~40% 라고 하죠. 하지만 그만큼 새로 생긴 직업도, 일자리도 많습니다. 인간이 얼마만큼 부가가치를 창출하냐에 따라 기술과 더불어 의미있는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상품 이미지 생성을 넘어, 광고·브랜딩 사업으로 확장할 계획이다. “과거에는 포토샵으로 광고 이미지를 하나씩 만들어냈다면 지금은 캔바로 템플릿을 고르고 수정하는 방식으로 변했어요. 드랩은 그 다음 단계, 즉 이미지를 생성하고 완성도를 높이는 방식으로 시장을 변화시킬 겁니다.”